"기본생계, 가족화목, 인간관계 등이 행복비결" "선진국의 행복지수 제자리걸음 `행복의 역설`" "가정해체는 자녀에 큰 상처, 범죄에도 악영향" "건전 가정은 경제 경쟁력 높이는 사회적 자본"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편집위원 = 중국 속담은 "귀한 것은 얻을 수 없고, 얻은 것은 귀하지 않다"고 갈파한다. 황금이 정작 내 손 안에 있어도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하면 돌에 불과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행복은 그 존재와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만 손짓한다. 마음먹은 만큼 행복해진다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은 불가의 `일체유심조`와도 통한다. 작가 도스토예프스키 역시 "인간은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했다.
이정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65)는 `행복`을 연구해온 학자다. 흔히 나오는 행복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문학, 사회학 등을 두루 꿰뚫어 진정한 행복 찾기에 나선다. 특히 소득과 행복, 개인과 사회의 유기적 상관관계를 촘촘하게 연결지어 파악하고 분석한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시대. 못 살던 시절의 기준으로 보면 행복지수가 무척 높아야 할 듯한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왜일까? 가정의 달을 맞아 이 교수에게서 행복의 실체와 현실을 가족에 초점을 맞춰 들어본다. 환경정의 공동대표이기도 한 그는 올해 초 펴낸 `우리는 행복한가` 등 다수의 저서를 썼다.
다음은 이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
-- 경제가 성장하고 소득이 높아지면 저절로 행복해지리라 믿어왔다. 그러나 국민소득과 행복지수는 정비례하지만은 않는 것 같다. 진정한 행복이란 과연 뭘까? ▲ 무엇이 행복이냐고 물으면 대답이 다양할 거다. 슈테판 클라인의 말처럼, 65억 명이 사는 지구상에는 행복에 이르는 길도 65억 개가 있다. 그만큼 행복은 주관적이란 뜻이다.
한편으로, 행복에 대한 생각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한 경제학자가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나라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행복에 대한 생각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다.
기본생계에 큰 걱정이 없고 건강하면 가족들 사이에 화목하고, 좋은 인간관계를 가지며, 보람 있는 일을 열심히 할 때 행복하다고 느낀다는 거다. 동양이나 서양, 잘 사는 나라나 못 사는 나라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
-- 경제성장과 소득증가로 물질적 풍요의 수준이 높아졌다. 그런데도 행복감은 긴장과 스트레스, 공허감 등으로 떨어지는 경우까지 있는데….
▲소득과 행복의 관계를 얘기할 때 유념할 점은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를 구분해야 한다는 거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가 안 되는 나라에서는 소득수준의 향상이 분명히 국민을 더 행복하게 해준다. 그러나 2만 달러가 넘는 선진국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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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지난 반세기 미국의 1인당 실질국민소득은 약 3배가 됐다. 하지만 행복하다는 사람의 비율이 늘지 않았다. 국민의 행복지수에 별 변화가 없다는 거다.
일본은 더 극적이다. 같은 기간에 1인당 국민소득이 약 7배 증가했으나, 국민의 행복지수는 거의 일정했다. 반세기 동안 유럽 선진국의 행복지수도 별로 향상되지 않았다. 대부분 선진국에서 소득수준 향상이 국민의 행복지수를 끌어올리지 못하는 현상이 관측되면서 `행복의 역설`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 행복의 중요한 바탕이 가정의 화목이라고 했다. 재정상태, 일, 공동체와 친구, 건강보다 더 중요하게 꼽았는데….
▲ 행복과 건강의 관계도 선진국과 후진국을 분명히 구분지어 얘기해야 한다. 선진국에 비해 후진국 국민은 병들어 일찍 죽거나 고생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후진국 국민에겐 건강이 행복에 중요할 수밖에 없다.
선진국 국민은 건강이 특별히 행복에 중요하다는 생각을 후진국에 비해 덜한다. 소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우리 국민도 건강이 지금처럼 행복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동양과 서양, 선진국과 후진국을 막론하고 행복의 기본바탕은 화목한 가정이다. 건강한 부부가 중심이 된 화목한 가정은 가족 구성원들을 행복하게 해줄 뿐 아니라 사회에도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 행복한 결혼과 화목한 가정은 불행한 사회를 저지하는 효과적 방어선이자 사회적 자본이다.
-- 행복의 원천이자 기본인 가정이 붕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많다. 이런 현상은 왜 생길까? ▲ 높은 이혼율을 비롯해 별거, 동거부부, 미혼모, 혼외출산의 급증이 가정해체와 결부된 문제로 자주 거론된다. 결혼기피와 저출산도 문제다.
한때 우리나라 이혼율은 세계 최고였다. 반면에 출산율은 최저수준이었다. 이런 가정해체 현상이 한국에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선진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선진국사회가 경제적으로는 윤택해졌으나 행복의 샘물은 점차 말라가고 있다.
가정해체 원인을 한 마디로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근원적으로 보면 섹스의 자유화를 포함한 자유주의 물결이 개인주의나 이기주의와 맞물리면서 가속화시켰다고 본다. 핵가족의 붕괴는 정신건강에 가장 큰 위협이다. 동거부부의 행복도도 결혼부부에 비해 떨어진다.
-- 이혼, 별거가 흔한 세상이다. 쉽게 만나 쉽게 헤어지는 이유가 뭘까? 일부에선 여성의 경제능력 확대와 관계가 있다고 보기도 한다.
▲별거와 이혼을 쉽게 결정하는 원인은 여러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 가정이나 육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과거보다 많이 엷어졌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오늘날에는 개인의 자유와 욕구,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예전에는 가정과 자녀를 위한 희생을 당연시했지만, 지금은 자신의 자유와 이익을 앞세운다. 그러다 보니 가정 문제도 개인 입장에서 득실을 계산한다.
가정은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측면이 있다. 개인의 자유와 이익이 최고로 중요해지는 세상에서 가정유지의 득실을 계산할 때 결혼생활이 별로 수지맞는 장사가 아니라는 건 높은 이혼율이 잘 반영한다.
여성의 경제능력 확대가 이혼율 증가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높다. 분명히 여성경제활동의 증가와 이혼율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다. 직장여성 이혼율이 전체 평균보다 훨씬 높다는 통계적 사실이 그런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 가정파탄의 최대 희생자는 자녀들인 것 같다. 청소년 문제와 직결돼 있는 듯하다. 남성중심적 자본주의사회에서 이혼녀가 홀로 살아가기도 만만치 않다.
▲미국의 한 연구에 의하면, 여성의 경제력이 크게 증가한 결과 남성들은 자녀양육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할 수 있는 적절한 구실을 찾게 됐다고 한다. 이른바 `치고 빠지기(hit and run) 아빠`다.
요즘엔 이혼 후 자녀양육을 서로 기피하는 풍조가 나타나고 있다. 여성의 경제력이 높아지면서 자녀양육은 으레 여성이 맡는 것으로 인식하기에 이른 거다. 이혼남의 부담이 가벼워진 반면, 이혼녀의 부담은 무거워졌다.
이혼의 가장 큰 후유증은 가난이다. 이혼녀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더 고민하게 되고 고통도 더 많이 당한다. 이혼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오랜 마음의 상처를 남긴다. 이혼 전에는 스트레스로 고생하고, 이혼 후에는 가난과 우울증으로 고생한다.
-- 가정해체는 범죄증가와도 관계가 있는 듯하다. 편부모 가정 비율이 높은 지역일수록 범죄율과 아동학대비율도 높다고 한다. ▲ 가정파탄은 당사자는 물론 자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자녀들의 인생항로 자체를 나쁜 방향으로 틀어버림으로써 영속적으로 악영향을 미친다.
가정해체가 높은 범죄율의 원인임을 밝힌 연구결과는 무수하다. 예컨대, 편부모 가정에서 자란 청소년의 일탈이나 범죄율은 평균보다 월등히 높다. 미국에서 10대 가출 청소년의 70%, 청소년 살인범의 70%가 편부모 가정 자녀들이다.
특히 혼외출산과 미혼모의 자녀는 높은 범죄율의 주 원인이 된다. 혼외출산 자녀의 대부분은 부모가 `원치 않는 아이들`이다. 원치 않는 출생처럼 청소년에게 나쁜 건 없다.
-- 이른바 `섹스혁명`은 이런 혼외출산과 미혼모 급증을 낳고 있다. 이 문제는 어떤 관점에서 봐야 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섹스혁명은 마음만 맞으면 아무하고나 성행위할 자유, 그리고 임신하지 않고 성행위할 자유다. 섹스혁명이란 섹스자유화를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섹스혁명은 개인의 자유를 크게 신장시켰다.
섹스혁명이 혼외출산을 양산했다는 주장은 잘 알려져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처럼 혼외출산 자녀가 높은 범죄율의 원인이다. 그렇다면 개인 자유의 증진이 가정해체를 야기하고 이것이 범죄를 증가시킴으로써 오히려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악순환의 연결고리가 형성된다. 섹스 자유화의 대가인 셈이다.
개인의 자유가 중시되는 요즘 풍토에서 `개인의 자유→가정해체→범죄증가→개인의 자유 침해`라는 악순환을 끊는 건 쉽지 않다. 낙태를 합법화해주는 게 범죄율을 낮추는 효과적 대책이라는 연구도 있지만, 이는 윤리적 문제를 내포할 뿐 아니라 근원적 대책도 되지 못한다.
무엇보다 의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무조건 개인의 자유를 신성시하고 권장하기만 할 게 아니라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분위기, 그리고 가정의 중요성을 깨우치게 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 시대흐름이 빨라지면서 세대차도 급격히 커졌다. 단절현상 또한 심각하다. 가정이 삐걱거리는 또다른 원인은 상호 관계조정능력의 미흡에도 있는 듯한데….
▲옛날의 다세대가정에서는 어른이나 친척들이 부부 갈등을 조정ㆍ완화해줬다. 오늘날 부부중심 가정에서는 그 역할이 결여돼 있다. 따라서 가정불화가 이혼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높아졌다.
개인 득실을 철저히 계산하는 행태가 만연한 상황에선 다세대가정을 이루기조차 힘들다. 젊은 부부는 그들대로 불편해하고 노인들은 그들대로 자식과 사는 걸 불편하게 생각한다.
우리 민족은 지금 두 민족, 즉 노인층과 젊은이 세대로 갈라져 있다. 이 두 민족은 의식이 전혀 다르고 언어마저 달라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이렇게 갈라진 주 이유는 지난 반세기 경제성장과 사회변화가 전대미문의 속도로 이루어져서다. 젊은이와 늙은이가 공유하는 것이 거의 없다. 노인들이 어렸을 때는 자동차를 꿈도 못 꿨지만, 젊은이들은 당연한 걸로 생각한다. 살아온 배경이 너무 다르다. 이제 세대 격차는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여서 안타깝다. -- 기타 해주시고 싶은 말씀은? ▲ 건전한 가정은 개인의 행복을 증진시킬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이익을 준다는 점을 명심하자.
대체로, 행복한 사람은 건강하고, 남을 더 잘 배려하며, 남을 더 잘 도와주고, 자선활동도 더 많이 한다. 불행한 사람은 그럴 마음의 여유를 가지기 어렵다. 따라서 건전한 가정을 통해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면 자연히 우리 사회도 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될 것이다.
건전한 가정은 이타심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함양하는 공장이다. 이타심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사람 사이의 신뢰가 형성된다. 이 신뢰는 소위 사회적 자본의 핵심이다. 사회적 자본은 경제적 비용을 절감시켜주며 우리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의 역할을 한다.